경제

"우리 먹을 몫, 외국 주지 마라"..글로벌 車 업계 휩쓰는 '일감 확보 전쟁'

진상훈 기자 입력 2019.10.14 06:0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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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국에서 판매하는 차량은 미국에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회사가 우리의 주장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미국 미시간주 오리온 타운십의 GM 공장 근로자들이 볼트EV 차량을 만들고 있다./한국GM 제공

전미자동차노동조합(UAW)의 테리 디테스 부위원장은 지난 8일(현지시각) 4만6000여명의 제너럴모터스(GM) 근로자들에게 이같은 메시지를 담은 서한을 보냈다. UAW에 소속된 GM 미국 공장의 생산직 근로자들은 사측의 공장 폐쇄 방침 등에 반발해 지난달 16일부터 파업을 하고 있다.

디테스 부위원장은 "미국에서 판매할 차를 계속 다른 나라에서 생산할 경우 우리의 일자리는 제대로 지켜질 수 없다"며 "고용 보장을 위한 최고의 해결책은 미국에서 세계적인 품질의 차를 더 많이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지역별 공장들의 생산물량 확보 경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자동차 시장의 성장세가 꺾이면서 공장 근로자들은 임금과 일자리를 보장받기 위해 생산물량을 우선 배정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 공장별로 생산차종과 물량을 조정해 효율성을 높이려던 기업들은 노조의 요구에 발목이 잡혀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

◇ 현대차 노조 "친환경차 생산은 국내에서만"…GM은 韓-美 노조간 ‘일감전쟁’

현대·기아차 노조는 해외에서 인기를 얻고 있거나 성장성이 높은 친환경차까지 국내 공장에 우선 배정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자동차(005380)는 노사는 올해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할 미래 신차의 배정을 다룬 단체협약 42조 7항의 개정 문제를 두고 갈등을 겪었다. 이 조항은 ‘하이브리드차와 전기자동차, 연료전지차 등 차세대 차종을 개발한 후 생산공장을 정할 때 국내 공장에 최대한 우선 배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조는 올해 임단협 교섭 과정에서 친환경차를 국내 공장에 우선 배정하도록 구속력을 높이기 위해 42조 7항에서 ‘최대한’이라는 문구를 삭제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현대차는 노조에 휘둘려 최근 빠르게 커지는 친환경차 시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될 것을 우려해 노조의 요구를 거부했다.

현대차 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6월 8일 울산 현대차 문화회관에서 올해 임단협 요구안을 확정하기 위한 대의원대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차 노사는 결국 문제가 된 단협 조항 개정 없이 올해 임단협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자동차 생산기술 변화로 제조업 일자리가 크게 줄어들 것을 우려한 노조가 앞으로 더 강하게 사측에 친환경차 우선 배정을 요구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기아차 노조는 올해 임단협 교섭을 앞두고 사측에 제시할 요구사항 목록에 미국에서 팔리는 대형 SUV 텔루라이드와 인도 첫 공장에서 만드는 소형 SUV 셀토스의 현지생산 중단을 포함시키기도 했다.

한국GM 노조는 미국에서 생산해 국내로 수출되는 대형 SUV 트래버스와 픽업트럭 콜로라도를 국내 부평2공장 등에서 생산하도록 해 줄 것을 요구하며 부분파업으로 회사를 압박하고 있다.

한국GM 노조는 당초 파업을 진행 중인 미국의 GM 노조와도 연대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미국 노조 측이 한국에서 생산하는 물량마저 자국으로 돌릴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지자 이를 철회했다. 생산물량 확보를 둘러싼 경쟁이 각 국가별 노조간의 대립으로 이어진 셈이다.

◇ 미래차 시대, 일자리 감소 우려 현실화…‘일감 전쟁’ 심화 가능성 커

최근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생산량은 점차 감소하는 추세다. 여기에 과거 내연기관만큼 많은 제조인력과 부품을 필요로 하지 않는 전기차의 비중이 확대되고 자동차 생산기술도 빠르게 발전하면서 제조업 근로자들의 ‘일자리 공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이달 현대차 노사가 주최한 고용안정위원회 본회의에서는 외부 자문위원들이 "전동화와 공유경제 확산 등으로 인해 오는 2025년에는 국내 자동차 제조업의 일자리가 지금보다 최대 40%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기아차 조지아공장 근로자들이 텔루라이드 생산라인에서 조업하고 있다./기아차 제공

이에 따라 줄어드는 일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생산물량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각 지역별 공장들의 일감 경쟁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일감을 보장받기 위한 노조의 압박이 회사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자동차 업체들은 각 지역별 수요나 인건비를 포함한 비용에 따라 생산계획을 조정해야 하는데, 노조의 일감 확보 요구로 발목을 잡힐 가능성이 크다.

예로 현대차는 지난해 말 출시한 대형 SUV 팰리세이드가 국내와 미국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었지만, ‘국내에서 생산하는 동일 차종을 해외 공장에서 생산하려면 노조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규정에 막혀 이 차를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GM 역시 서로 일감을 얻으려는 한국과 미국 노조가 오랜 기간 파업을 이어가면서 극심한 생산 차질을 겪고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줄어드는 제조업 일자리에 대한 공포가 ‘일감 국수주의’로 번지는 양상"이라며 "완성차 판매량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앞으로 생산물량의 조정과 남는 공장의 구조조정 문제가 기업들의 큰 고민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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