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여행] 쉐보레 더 뉴말리부 E-터보로 찾은 '의암 류인석유적지'

모클팀 입력 2019. 8. 5.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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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보레 더 뉴 말리부 E-터보와 함께 의암류인석유적지를 찾았다.

쉐보레 더 뉴 말리부 E-터보와 함께 강원도를 향해 달렸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강원도를 좋아한다. 어릴 적 많은 시간을 보내던 자리라 그런지 예전부터 강원도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럴까? 과거에도 여러 번 다녀왔던 만큼 이번의 여정 또한 많은 기대를 갖고 시작하게 됐다. 과연 쉐보레 더 뉴 말리부 E-터보는 강원도에서의 여정 속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또 강원도에서는 어떤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

E-터보로 충분한 강원도에서의 주행

더 뉴 말리부 E-터보의 보닛 아래에는 GM의 차세대 엔진 개발 전략이자, 실린더 기반의 모듈 전략인 CSS(Cylinder Set Strategy)를 반영한 1.35L 배기량의 E-터보가 자리한다.

낮은 배기량이라고는 하지만 막상 도로 위에서는 충분히 제 몫을 다한다. 실제 E-터보는 156마과 24.1kg.m의 준수한 토크를 기반으로 일반적인 도로는 물론이고 고속도로, 강원도의 고갯길 등에서도 효과적으로 드러났다.

실제 서울에서 고속도로를 달려 강원도를 달리는 동안 출력에 대해 전혀 문제가 없음을 느낄 수 있고, 또 대중들의 머리 속에 부정적으로 자리한 'CVT'에 대한 불만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차량의 셋업에 많은 신경을 써서 그런지 차량의 움직임은 무척이나 경쾌하고, 운전자의 의지를 거침 없이 전달하며 즐겁고 여유로운 주행을 누릴 수 있었다. 또 가벼움 속에서도 깊은 한계에서도 충분히 제 몫을 다하는 모습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이와 함께 넉넉한 공간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더 뉴 말리부는 4,935mm에 이르는 긴 전장과 이에 걸맞은 2,830mm에 이르는 긴 휠베이스를 기반으로 넉넉한 공간을 제공한다. 체형과 체격을 가리지 않는 넉넉함을 누리고, 레그룸이나 헤드룸 부분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게다가 보스 사운드 시스템까지 더해져 있으니 강원도를 향해 달리는 과정이 무척이나 여유롭고 즐거워 그 만족감이 상당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 참으 달려 '의암류인석유적지'에 닿았다.

의암 류인석을 닮은 곳

강원도 춘천시 남면 충효로에 위치한 의암류인석유적지는 고요했다. 관리사무소를 시작해 충의문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 안쪽에는 의암 류인석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건축물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가장 먼저 보였던 것은 한국국민의회 선언문비, 그리고 순국 100주년 기념 어록비였다. 말 그대로 의암 류인석의 존재감과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충의문 안쪽으로는 의암 기념관과 관일약비, 연보벽, 어록벽 등은 물론이고 의암 류인석 묘역과 의열사, 의병 수련관은 물론이고 학생들이 의병에 대한 체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의병학교'가 자리해 눈길을 끈다.

참고로 의암류인석유적지는 단순히 유적지 내에서의 교육이나 활동에 그치지 않고, 국내외 의병유적 탐방은 물론이고 찾아가는 독입운동교실 등의 다양한 대외활동을 펼쳐 의암 류인석을 떠올리게 한다.

한편 의암류인석유적지는 매년 4월 12일, 시민들과 함께 하는 의암제를 행한다. 의암 류인석을 기리고, 또 그의 열정과 충정을 다시 새기는 행사다.

지금 더욱 생각나는 위인, 의암 류인석

건국훈장 대통령장 수훈자이자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충주와 제천을 중심으로 활동한 역사적인 인물 중 한 명인 의암 류인석은 '의병장'의 대표적인 존재 중 하나다.

을미사변 이후 의병 항쟁이 시작될 무렵, 의암 또한 수 많은 사람들을 모아 의병 운동을 준비하게 된다. 국내의 의병 활동을 이어가던 중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되자 전투를 이어가며 서간도로 자리를 옮겼다.

의병 활동 이후에는 후학을 육성하기도 했으며 경술국치에 반대하는 성명회 선언서를 발표하며 육체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훗날, 다소 봉건적인 태도로 인해 아쉽다는 평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격동의 시대에 자신의 의지와 국가에 대한 열정을 그 누구보다 뜨겁게 선보였던 이라는 건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의암류인석유적지를 떠나며..

쉐보레 더 뉴 말리부 E-터보와 함께 의암류인석유적지를 둘러본 후 다시 시동을 걸고 서울로 움직일 준비를 했다. 그리고 문득, 최근 국내에서 뜨겁게 펼쳐지고 있는 일본에 대한 대응, 그리고 그 분위기가 떠올랐다.

한국일보 모클팀 - 김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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