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제네시스 G90, 사장님이 내리면 어떻게 변신할까

박영국 기자 입력 2019. 7. 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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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 박영국 기자]무난함 벗어나 '럭셔리' 지향한 디자인
5000cc 가솔린 엔진의 넉넉한 성능…운전재미도 쏠쏠

제네시스 G90. ⓒ데일리안 박영국 기자

에쿠스 → EQ900 → G90. 현대자동차의 플래그십 세단 ‘에쿠스’가 제네시스 브랜드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소비자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쳤지만 지난해 11월부로 국산 최고급 자동차의 명칭은 제네시스 G90(지 나인티)로 정리됐다.

국내에서 과거 에쿠스가 맡아 왔던 ‘사장님 차’의 역할을 이어받음과 동시에 BMW 7시리즈나 벤츠 S클래스, 아우디 A8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의 플래그십 세단들과 경쟁하는 막중한 임무를 짊어진 G90를 만나봤다.

시승차는 5000cc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이 장착된 5.0 가솔린 프레스티지 모델로, 리무진을 제외한 최상위 모델이다.

이 차가 G90라는 이름을 얻는 과정에서 생긴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디자인이다. 사실 G90는 EQ900의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 모델 개념이라 근본적인 변화를 가할 수는 없다. 디자인 변화도 기존 모델의 틀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90는 EQ900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변신했다.

제네시스 G90. ⓒ데일리안 박영국 기자

외관은 전반적으로 ‘블링블링’해졌다. EQ900가 전형적인 사장님 차답게 점잖고 정제된 스타일이라면 G90는 고급감을 강조하는 디자인 요소들로 차체를 뒤덮었다.

전면은 커다란 방패 모양의 오각 그릴이 대형 세단다운 웅장한 이미지를 만들어준다. 일단 크기가 국내 존재하는 어떤 세단보다 크고, 아래로 급격히 좁아지며 꼭짓점이 범퍼 하단까지 이어지는 파격적인 모습이다. 회사측은 이를 귀족 가문의 문장이라는 뜻에서 ‘크레스트 그릴’이라고 이름 붙였다.

헤드램프는 제네시스의 시그니쳐 디자인 요소인 쿼드램프가 적용됐다. 길게 수평으로 이어진 주간주행등을 경계로 한 쌍씩 상하로 나뉘어 고급스러우면서도 진보된 기술적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같은 전면 디자인에는 소비자별로 호불호가 갈리지만 개인적으로 무난함을 벗어난 파격적인 시도로 대형 고급 세단에 걸맞은 럭셔리한 분위기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전면 그릴과 헤드램프를 나누는 선에서 시작해 후드와 측면을 거쳐 후면까지 수평으로 이어지는 캐릭터 라인은 한층 안정적이고 묵직한 인상을 준다.

테일램프도 헤드램프와 마찬가지로 상하로 분리된 모습이다. 범퍼 하단의 듀얼 머플러는 납작하게 눌러놓은 5각형으로, 전면 그릴 형상과 통일성을 살리는 깨알 같은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제네시스 G90 실내 모습. ⓒ제네시스

대형 고급 세단답게 내장 디자인도 으리으리하다. 거의 모든 부분이 촉감이 좋은 가죽이나 원목 소재로 감싸져 있고, 대화면 내비게이션은 대시보드의 수평 레이아웃에 거치적거림 없이 깔끔하게 심어져 있다.

버튼류는 크롬 도금으로 고급스러운 모습을 연출했고, 버튼의 배치나 조작감도 직관적이다.

센터콘솔 위에 오른팔을 걸치고 기어봉 위에 손을 얹으니 세상 편안하다. 변속기는 전자식이지만 버튼이나 다이얼이 아닌 기어봉으로 조작하는 방식이라 낯설지 않은 게 마음에 든다.

시트는 착좌면이나 등받이는 물론 머리받침(헤드레스트)까지 포지션을 조정할 수 있다. 시트 포지션 조정시 디스플레이에 조정 부위나 각도가 표시되는 점도 편리하다.

사장님들과 국회의원 등 ‘높으신 분들’을 모셔야 하는 만큼 뒷좌석은 편안하고 각종 편의시설이 집약돼 있다. 전동시트로 각도를 조절하면 항공기 비즈니스클래스 못지않은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 있다.

뒷좌석 좌우 시트를 가로지르는 센터콘솔에서 공조장치와 오디오, 앞좌석 뒤에 부착된 디스플레이 등을 조작할 수 있다.

5.0 가솔린 프레스티지 모델의 암레스트는 접이식이 아니라 고정식으로, 앞좌석 센터콘솔과 이어져 뒷좌석의 좌우 공간을 분리하는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뒷좌석에는 2인만 탑승할 수 있지만, 그 대가로 뒷좌석 승객은 완전히 분리된 공간을 만끽할 수 있다. 사실 최고급 세단 최상위 트림 뒷좌석을 세명이 끼어 앉는 용도로 사용할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3.8 가솔린이나 3.3 터보 모델들은 뒷좌석 암레스트가 접이식으로 3인 탑승이 가능하다.

제네시스 G90 뒷좌석 모습. 5.0 가솔린 프레스티지 모델은 암레스트가 이처럼 고정식으로, 좌우 공간을 분리해 준다. ⓒ제네시스

과거 고출력 엔진이 장착된 대형 세단이 뒷좌석에 귀빈을 모시고 안전하고 조심스럽게 운행하는 것을 보고 저럴 거면 굳이 왜 기름 많이 먹는 고출력 엔진을 달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

한편으로는 뒷좌석에서 ‘사장님’이 내리면 저 차를 몰고 ‘극한의 레이싱’을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그 생각을 실행으로 옮겨볼 때다. 앞좌석으로 옮겨가 시동버튼을 누르니 조용하면서도 묵직한 저음의 엔진 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저속에서는 가속페달을 밟거나 핸들을 돌리는 느낌이 모두 묵직하다. 브레이크는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느낌으로 바퀴를 확실하게 잡아준다.

고속도로로 나와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니 부드러운 엔진음이 다소 야성적으로 변한다. 톨게이트에서 카드를 뽑느라 잠시 정차한 뒤 다소 무리한 가속을 요구했으나 G90는 램프의 거인이 “언제든 분부만 내리십쇼”라고 답하듯 빠르면서도 여유 있게 법정 최고속도까지 치고 올라간다.

배기량 대비 높은 출력을 끌어올리는 터보엔진이 대세라지만 기름값 걱정이 상대적으로 덜한 고급 세단 오너들에게는 역시 고배기량 엔진의 여유로운 가속과 토크감이 제격이다.

G90의 심장인 타우 5.0 V8 GDi 엔진은 터보엔진처럼 억지로 힘을 짜내는 게 아니라 묵직한 힘을 가득 쌓아두고 언제든 필요한 만큼 사용하라고 여유를 부리는 듯하다.

제네시스 G90에서 사장님이 내리면? ⓒ제네시스

계속해서 가속페달을 밟아댔지만 속도가 크게 오르는 느낌이 아니다. 계기판을 확인해 보니 속도계는 체감보다 훨씬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속도가 오르지 않는 게 아니라 고속에서도 차가 워낙 안정적이라 속도가 높아진 걸 체감하지 못한 것이었다.

주행모드를 스포츠모드로 바꾸면 조용하던 엔진음도 좀 더 다이내믹해지고, 가속페달의 응답성도 더 신속해진다.

급회전 구간에서도 출렁임 없이 도로를 단단하게 붙잡고 운전자가 의도하는 만큼의 조향각으로 응답한다. 묵직한 핸들링이 믿음직스럽다. G90는 굳이 얌전히 다닐 이유가 없는 차였다.

생각이 바뀌었다. “뒤에 ‘사장님’을 태운 채로 레이싱을 해도 눈치 못 채겠구나.”

반자율주행에 가까운 첨단 주행보조장치(ADAS)의 성능은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요즘엔 웬만한 소형 SUV에도 ADAS가 들어가는데 최고급 대형 세단에 각종 ADAS를 넣는 수고와 비용을 아꼈을 리 없다.

연비 역시 따로 체크하지 않았다. 5000cc 자연흡기 엔진을 장착한 2.2톤짜리 차를 몰면서 연비 따지는 이는 없을 테니.

에쿠스의 혈통을 이은 G90은 여전히 국내에서는 쇼퍼드리븐(주인이 뒷좌석에 앉는 차)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직접 몰아보니 오너드리븐(직접 운전하는 차)으로도 손색없는 훌륭한 운전 재미를 제공한다. 운전기사로 오해하는 주변의 시선만 무시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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