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이래도 안사시겠습니까?" 車 가격파괴 전쟁

이재철 입력 2019.07.19 17:30 수정 2019.07.19 18:1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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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차부터 업그레이드 모델까지 파격할인
없어서 못파는 팰리세이드
싼타페 최고사양보다 저렴
K5·SM6 신형도 가격인하
내수 부진에 출혈경쟁 가열
# 현대 '팰리세이드'. 돈을 쥐어 줘도 못 산다는 이 차에는 놀라운 '가격' 비밀이 숨겨 있다. 출시 후 선풍적 인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지난해 말 가격 책정 당시 현대차는 팰리세이드 가솔린 기본 모델을 싼타페 최고 사양 모델(디젤 2.2 익스클루시브)보다 120만원 더 저렴하게 책정했다. 내수 경기가 워낙 침체되다 보니 동급도 아닌 아래 모델 대비 더 저렴하게 가격표를 붙이는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다.

극심한 내수 부진에 시달리는 완성차 업계가 대형마트 못지않은 '가격파괴' 전략으로 소비자들 지갑을 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등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완성차 5개사의 내수 판매 실적은 △현대차 38만4113대 △기아차 24만2870대 △쌍용차 5만5950대 △르노삼성차 3만5598대 △한국GM 3만6506대 등 총 75만5037대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75만7003대) 대비 0.3% 감소한 것으로, 완성차 업계는 작년 상반기에도 2017년 대비 2.9% 역성장했다.

팰리세이드 사례처럼 현대차조차도 4만명에 육박하는 사전계약 수요가 몰리고 있는 이 차종을 내놓기 전까지 '흥행 실패' 가능성에 대비해 이 같은 가격파괴 전략을 선택할 정도다. 여기에 적자생존의 최상위 포식자인 현대차가 올해 각종 신차를 즐비하게 내놓으면서 과거 '2강(현대·기아차)·1중(쌍용차)·2약(한국GM·르노삼성차)' 구도마저 '2강(현대·기아차)·3약(나머지 기업)' 구도로 재편되고 있다는 평가다. 올해 상반기 현대·기아차의 합산 점유율은 82.7%로, 17.3%의 시장을 놓고 쌍용차·한국GM·르노삼성차가 사즉생의 격전을 치른 것이다.

생존을 위해 한 치의 양보와 자비도 허락하지 않는 업체 간 경쟁은 대형마트 진열대 상품과 같은 출혈적 가격파괴 전략으로 이어지고 있다.

쏘나타와 함께 중형 세단의 양대 산맥인 기아차 'K5'는 최근 완성차 시장의 소비 트렌드가 세단에서 SUV로 확연하게 선회하자 지난 3월 2020년형을 출시하면서 오히려 가격을 내리는 선택을 했다. 가솔린 2.0 인텔리전트 트림의 사양 조정을 통해 종전 모델보다 39만원이 더 싼 가격표를 붙였다.

이는 당장 경쟁 관계인 르노삼성차의 SM6에 직격탄이 됐다. 최근 2020년형 모델을 내놓은 르노삼성차는 상품성을 강화하면서도 오히려 가격을 50만원(SE 트림)·30만원(RE 트림) 낮추는 선택을 했다. 이에 대해 르노삼성차는 "트림별로 고객 선호도가 높은 사양은 추가해 프리미엄 가치를 높이고, 불필요한 사양은 제외해 가격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쏘나타·K5와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동급 최상의 가성비 전략만이 살길이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한국GM 상황은 더욱 절박하다. 올해 초 주요 제품의 판매가격을 아예 새롭게 책정하는 파격 전략으로 승부수를 띄운 상태다. 대한민국 '대표 패밀리카'로 만들겠다며 지난해 출시한 SUV 이쿼녹스 판매량이 기대에 못 미치자 올해 판매가격을 전년 대비 최대 300만원 더 낮춰 2900만원 초반대부터 시작한다. 여기에 월별 판매 조건 혜택까지 적용하면 할인 폭이 더 확대되는 등 가격 육탄전을 벌이고 있다.

전통의 SUV 명가인 쌍용차도 가격파괴 전략에 합류했다. 코란도와 함께 자사 대표 차종인 티볼리 부분변경 모델(베리 뉴 티볼리)을 최근 출시하면서 파워트레인 교체, 디지털 클러스터 적용 등 대규모 업그레이드 비용에도 불구하고 가격 인상을 최소화했다.

티볼리는 그동안 쌍용차 판매의 40%가량을 차지해 온 효자 모델로 국내 소형 SUV 시장을 이끌어 온 명차로 꼽힌다. 그럼에도 이번 신형 가솔린 기본 모델 가격이 1678만원으로 책정돼 2016년형 모델(1635만원)과 43만원 차이에 불과하다.

A완성차 업체 고위 임원은 "엔진과 파워트레인을 새롭게 바꾸고도 수년 전 모델과 거의 동일한 가격 구조를 가져간다는 것은 그만큼 내수 상황이 최악이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20·30대 젊은 고객은 가성비(가격 대비 품질)보다 가심비(가격 대비 즐거움·심리적 만족)를 추구해 각종 첨단 디지털 사양을 더 넣고 있다"며 "아무리 가격을 낮춰도 내수가 살아나지 않는 데다 제조원가 대비 출혈적 가격 경쟁 압박은 더 커지고 있어 그야말로 죽을 맛"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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