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자동차, 만든 국가와 개발 국가의 사이

2019. 7. 18.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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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역은 생산지 기준, 소비자 인식은 브랜드 기준

 흔히 '다국적기업(Multinational Corporation)'이란 여러 나라에 걸쳐 영업 또는 제조 거점을 두고 각 나라의 정치적 경계와 무관하게 사업하는 곳을 이른다. 그렇다 보니 '개발-생산-판매'라는 제조업의 활동 무대를 기업이 태어난 국가로 한정 짓지 않는다. 어디든 싸게 잘 만들면 공장을 짓고, 어디든 살 사람이 많으면 가까운 공장에서 물건을 수입해 판매하며, 어디든 개발 능력이 뛰어나면 연구센터를 만든다. 그래서 대부분의 다국적기업은 글로벌 곳곳에 연구센터와 생산공장을 두고 지구촌 곳곳에 판매법인을 세워 제조물을 공급한다. 같은 제품이라도 생산 국적이 다양하다는 의미에서 다국적기업으로 부른다. 

 그런데 다국적기업이라도 기업이 원래 태어난 나라는 있기 마련이다. 처음부터 다국적기업이 된 것이 아니라 기업이 애초 설립된 국가에서 성장해 점차 해외로 뻗어 나가며 다국적기업이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다국적기업의 대표적인 분야가 자동차다. 처음에 기업이 둥지를 틀고 성장한 곳은 하나의 국가지만 보다 많은 성장을 위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다 보니 어느새 '개발-생산-판매'가 여러 국가에 걸쳐 유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런 이유로 자동차를 하나의 상품으로 국가 간 무역거래를 할 때는 다국적기업이 처음 태어난 곳의 국적이 아니라 제조국 기준을 따지는 게 기본이다. 이때 교역국이 기준 삼는 것은 완성차에 사용된 부품의 원산지 조달율이다. 다시 말해 자동차 한 대에 들어간 부품이 해당 국가에서 일정 비율 이상 공급됐을 때 상대국에서 만들어진 제품으로 인정한다. 이렇게 서로 원산지 합의가 되면 추가 조건 등을 감안해 교역이 이뤄진다. 다국적기업의 복잡한 사업 구조를 감안할 때 호혜적인 교역이 되려면 원산지 규정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무역 관점에서 적용될 뿐 일반 소비자에게 자동차는 해당 브랜드가 태어난 국가의 인식이 강하다. 흔히 시중에서 '독일차, 일본차, 한국차, 미국차' 등으로 여겨지는 게 대표적이다. 대표적으로 독일차가 미국에서 만들어져 한국에 들어왔다 해도 국내 소비자는 이를 독일차로 생각할 뿐 '미국산(Made in USA)'이라는 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만들어진 일본차도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 수입되면 그냥 '일본차(Japanese Car)'일 뿐 '미국산(Made in USA)' 개념은 희석된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지엠 부평공장에서 생산돼 미국으로 수출되는 소형 SUV 트랙스를 미국 소비자들은 쉐보레 브랜드가 붙여졌다는 이유만으로 '미국차'로 인식한다. 반면 미국에서 생산된 현대차 쏘나타는 미국 현지에서 생산됐음에도 '미국차'가 아니라 '한국차'로 여기기 마련이다. 그만큼 제품의 원산지보다 브랜드의 국적 개념이 시장에선 강하게 작용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각 나라마다 브랜드는 뒤로 하고 완성차 생산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는 점이다. 공장이 있어야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자동차산업의 특성상 부품망도 조성되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수시로 미국 내 해외 브랜드의 자동차공장이 늘어나고 있음을 자화자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 이외 지역에서 생산돼 미국으로 수입되는 자동차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으름장을 놓기 일쑤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일본차 불매운동을 해석할 때 원산지 개념을 정교하게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일본차의 40%는 '미국산(Made in USA)'인 탓이다. 다시 말해 미국에서 생산돼 한국으로 수출되는 미국산 일본차의 숫자가 줄어들면 한미 완성차 교역에 또 다른 불평등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우려다. 가뜩이나 한국에서 미국으로 68만대를 수출하되 미국산 완성차는 5만대가 수입된다는 점을 문제삼는 트럼프 정부가 근본 원인은 '나 몰라라' 하면서 한일 갈등에 따라 벌어진 미국산 일본차의 불이익만을 가지고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면 한국은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 자동차 교역은 생산국 기준일 뿐 브랜드의 국적은 따지지 않아서다. 

 만약 이 때문에 한미 갈등이 일어나 한국에서 미국차 불매운동이 일어난다면 한국지엠 부평공장에서 생산돼 국내에서 판매되는 쉐보레 말리부는 사야 할까 말아야 할까? 브랜드의 국적을 따지면 미국차이니 말이다. 하지만 생산지는 한국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생산하는 자동차를 우리 스스로 불매운동하는 형국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미국에서 한국차 불매운동이 벌어져도 마찬가지다. 이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안은 방대한 내수 시장이지만 우리는 생산량에 비해 살 사람이 많은 곳이 아니다. 그래서 수출이 우선일 수밖에 없고 그러자면 무역에선 브랜드보다 원산지 국적이 보다 중요한 개념이라는 점을 정교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 물론 미국산 일본차라도 이익이 나면 일부가 일본으로 넘어가겠지만 적어도 미국이 얻는 이익 또한 적지 않음을 살펴봐야 한다는 뜻이다. 

 박재용(이화여대 미래사회공학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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