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괴리 '자동차 법규', 차도 사람도 불만

김준 선임기자 2019. 2. 17.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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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팰리세이드, 기준 맞추려고 없어도 될 램프 부착…디자인·설계 제약
ㆍ자주 쓰는 하향등 대신 상향등 검사·‘깜빡이’ 색 규정 등 현실 안 맞아
ㆍ양산도 않는 ‘돌출 사이드미러 없는 차량’은 승인…“기준 개선해야”

현대차 팰리세이드 전면과 전면 우측의 주간주행등 부분을 확대한 모습(오른쪽 사진). 팰리세이드 최초 디자인에는 중간에 어른 엄지손가락만 한 램프가 없었다. 하지만 램프 간 거리가 75㎜ 이하여야 하나의 주간주행등으로 간주한다는 규정 때문에 추가됐다. 현대차 제공

자동차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자동차의 성능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제정한 ‘자동차관리법’의 일부 규정이 시대에 뒤처져 정비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비현실적이거나 기술 발전을 뒤따라가지 못하는 기준 때문에 운전자들이 불편을 겪고 차량 설계·디자인에 제약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17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가 최근 출시한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팰리세이드는 범퍼 좌우측에 어른 엄지손가락만 한 소형 발광다이오드(LED) 램프가 부착됐다. 현대차 설계팀이 굳이 이 소형 램프를 범퍼에 장착한 것은 관련 법규를 맞추기 위한 ‘편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현행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을 보면 주간주행등의 경우 차량 좌우 1개씩 2개만 허용되고 있다. 디자인상 주간주행등이 상하로 분리돼 설치될 경우, 하나로 간주되기 위해서는 각 램프 간 거리가 75㎜ 이하여야 한다.

그러나 팰리세이드 주간주행등은 ‘ㄷ자’ 형태로 위쪽은 보닛 쪽 헤드램프(안개등) 안에, 아래쪽은 범퍼 중앙 움푹 파인 곳에 위치해 두 램프가 기준 거리 이상 떨어지는 모양새를 하고 있으며 램프 간 거리가 75㎜를 넘는다. 이 때문에 주간주행등이 4개로 간주돼 형식 승인을 받지 못했고, 현대차는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별도 광원의 소형 램프를 설치해 75㎜ 규정을 충족시켰다. 반면 미국에는 이 같은 규정이 없다. 미국으로 수출되는 팰리세이드의 경우에는 램프가 설치돼 있지 않다.

자동차 방향지시등 관련 규정도 현실에 맞게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자동차관리법에 따르면 한국에서 운행되는 자동차의 방향지시등은 노란색이나 호박색 또는 같은 색을 내는 전구를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이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미국에서 생산돼 한국으로 수출되는 차량은 붉은색 방향지시등을 허용하고 있다. 반면 독일 등 유럽에서 제작돼 미국에 수출된 차량 가운데 붉은색 방향지시등을 장착한 차는 한국인 주재원이나 유학생 등이 귀국하면서 국내에 들여올 경우 반드시 노란색 방향지시등으로 바꿔야 한다. 국내에서 규정에 적합한 콤비네이션램프(방향지시등과 제동등이 조합된 등화장치)를 구할 수 있지만 관련 부품값만 수백만원에 이르러 소비자들에게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의 차량 전조등 검사와 관련된 규정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전조등에는 하향등과 상향등이 있는데, 야간 주행 때는 하향등을 켜야 한다. 상향등은 조도가 높아 마주 오거나 앞서가는 차량의 시야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높이나 밝기 기준은 하향등에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도로교통안전공단에서는 시행규칙에 따라 상향등을 검사한다.

법 규정이 너무 앞서 유명무실해진 기준도 있다. 과거 자동차관리법은 자동차에 반드시 사이드미러를 의무적으로 장착토록 규정했다. 그러나 2017년 1월 사이드미러 대신 카메라 모니터 시스템만 장착한 차량도 허용토록 규칙을 바꿨다. 옆으로 툭 튀어나온 사이드미러가 없어도 형식 승인이 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정작 국내 업체를 포함한 세계 완성차 업체들은 사이드미러를 없앤 차량을 양산하지 않고 있다. 한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안전성 면에서 카메라 모니터가 기존 사이드미러를 대체할 수 있는지 더 많은 검토가 필요하다”면서 “업계조차 꺼리는 자동차 관련 법규를 신설하기보다는 구닥다리가 된 과거 기준부터 손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준 선임기자 j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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